김성덕 안경사의 와인 이야기 ② 따뜻한 와인
국내 안경업계에서 와인과 차(茶) 마니아로 잘 알려진 김성덕 안경사(경기도 시흥 샤론안경). 김 안경사는 기업체 와인 강의까지 할 정도 와인에 대한 조예가 깊다. 그가 평소에 갖고 있는 와인에 대한 철학과 와인 종류 등 쉽고 재미있는 와인 이야기를 본지를 통해 풀어 놓는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감기에 걸리면 어머니께서 콩나물에 갱엿을 고아 차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콜록거리며 콩나물을 수저로 꾹꾹 눌러가며 떠먹던 그때의 맛을 기억해 보노라면, 그땐 그랬지 하며 입가에 잔잔히 미소가 떠오릅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뭉근히 녹아든 달달하고 개운한 민간표 감기약은, 그저 맛있는 간식이었는지 모릅니다. 민간표 감기약의 유럽 버전이 있는데요 바로 뜨거운 와인입니다.
프랑스에서는 뱅쇼, 독일에서는 글뤼바인이라 불립니다. 먹다 남은 와인이나 저가 와인에 사과, 귤, 오렌지 등을 나박나박 썰어 넣고 시나몬 스틱이나 계피 가루를 약간 넣고 냄비에서 중불로 20분 정도 끓이면 완성됩니다. 취향에 따라 설탕이나 꿀을 가미하면 좋습니다.
고급 와인은 사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와인의 향기를 허공에 날려 버려도 좋을 만큼의 부자는 아무 상관 없겠지만 말입니다. 와인 잔이나 머그잔에 마셔도 좋고 노인이나 어린이 모두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프랑스식 쌍화차라 할 수 있습니다. 불의 세기나 시간을 조절하면 알콜의 양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뱅쇼는 이런 저런 잡탕을 섞어서 새 메뉴를 개발한 셈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화나 예술은 언제나 이질적인 것들의 조합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가 마시는 유럽의 와인들은 미국의 와인이기도 합니다.
1840년 유럽에서 포도나무 뿌리가 썩는 필록세라가 발생합니다. 와인산업이 초토화 되자 유럽의 포도나무 뿌리를 잘라내고 미국의 포도나무 뿌리로 이식을 하여 위기탈출에 성공합니다. 남의 것을 배척하지 않고 받아 들였기에 이후에 유럽의 와인산업은 큰 성장을 하게 됩니다. 추운 겨울 찬바람을 맞고 돌아온 저녁이나 칼칼하게 목이 잠길 때, 부슬부슬 비가 내릴 때나 눈이 내리는 밤에 나만의 뱅쇼 만들기를 해보세요.
파티음료로 준비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특별한 날에 와인을 따는 것이 아니라 와인을 따는 날이 특별한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