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덕 안경사의 와인 이야기 ⑥
와인과 떼루와
국내 안경업계에서 와인과 차(茶) 마니아 로 잘 알려진 김성덕 안경사(경기도 시흥 샤론안경). 김 안경사는 기업체 와인 강 의까지 할 정도 와인에 대한 조예가 깊다. 그가 평소에 갖고 있는 와인에 대한 철학 과 와인 종류 등 쉽고 재미있는 와인 이야 기를 본지를 통해 풀어 놓는다.
좋은 와인을 생산하는 가장 중요한 요건은 ‘떼루와’입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토양’이라고 번역하고 영어로 SOIL이라 합니다. 한마디로 흙이죠. 좋은 와인은 좋은 땅에서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비옥한 흙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거름이 많고 비옥한 땅은 포도나무의 잎과 포도 열매가 영그는데는 좋을 수 있겠지만 깊은 맛과 향의 품질에는 마이너스로 작용합니다. 고급 와인이 나오는 토양은 사실 매우 척박하다고 하는데 척박한 땅에 심겨진 포도나무는 영양 성분을 찾아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겉 표면의 흙(Top soil)과 그 아래쪽의 흙(sub soil)은 여러 층의 토양이 무지개 떡처럼 경계를 이루며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맨 위의 흙은 자갈과 모래 성질, 중간 부분은 점토층으로 심부 쪽은 석회암과 이회토 같은 미네랄 성분의 토양인 경우에는 포도나무의 뿌리가 다양한 층위의 영양 성분을 빨아들여 훌륭한 와인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이런 토양은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의 로마네 꽁티가 대표적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와인이 생산되는 ‘떼루와’인 것이지요. 로마네 꽁티 포도밭은 중생대(1억4천~1억 8천만년전)에는 바다였던 곳이 융기되어 육지가 되면서 조개나 산호 같은 해양 생물들이 퇴적되어 미네랄 성분이 땅에 고스란히 녹아있어 짠맛과 미네랄리티를 와인에서 느낄 수도 있습니다.
같은 포도밭이라도 땅의 경사도나 물빠짐, 햋빛이 닿는 정도에 따라 와인의 풍미가 달라집니다. 프랑스의 북서부 부르고뉴지역의 포도밭은 1미터, 2미터 정도만 떨어져도 와인의 풍미가 다르다는 것을 수세기에 걸쳐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이유로 돌담 ‘clow 끌로’을 쳐서 포도밭에 경계를 만들었고 이것을 끌리마 ‘climat’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토양의 구조와 성질에 따라 완전히 다른 와인이 생산되므로 경계를 지어 등급을 매기는 것입니다. 신라 시대의 골품제 같은 느낌이어서 떨떠름하지만 그만큼 토양이 중요하다는 방증이기도 하지요.
‘떼루와’가 토양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햋빛, 바람, 밭의 경사도, 양조 기술까지 의미합니다. 프랑스와 같은 구대륙 와인은 토양을 더 강조하지만 미국이나 칠레, 호주, 남아공같은 신대륙 와인은 양조 기술을 더 강조하기도 합니다. 1976년도에 프랑스 파리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프랑스와인과 미국와인의 블라인드 와인 비교 시음회는 일방적인 미국 와인의 승리로 끝나 ‘떼루와’가 와인의 품질에 절대적인가라는 의문점을 남기게 되는데요. 이런걸 보면이 세상에 절대라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랑스에 밀렸던 이탈리아 와인이 수퍼투스칸으로 프랑스를 깜짝 놀라게 하였고 8~90년 밖에 안된 미국의 나파밸리 와인이 두 번이나 프랑스 와인을 꺾은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여기에는 미국의 나파밸리 와이너리 오퍼스원의 창립자 로버트 몬다비와 같은 열정적인 혁신가의 노력이 뒷받침 되었습니다. 그는 프랑스 5대 샤또를 만든 ‘샤또 무똥 로칠드’의 거장 필립 드 로칠드의 콜라보 제안을 수락하여 세계적인 오퍼스 원 와인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와인이 코를 바탕으로한 예술이었다면 미국의 와인 양조는 분석을 바탕으로 한 과학이라고 말합니다. 떼루와라는 변치 않는 토양에 양조기술의 집념이 만든 합작품인 셈입니다. 열린 마인드와 융합하는 태도는 모든 분야에 통하는 성공의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