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가 내 두발을 옮기고 있었다

2010-04-20     강민구
섭씨 50도 열기…끝없는 '모래 지평선'…

뜨거운 열기에 숨도 못 쉬고 있는데 누군가 일어나라며 어깨에서 내려놓지도 못한 배낭을 나와 함께 질질 끌고 갔다. 이번이 세번째 참가라는 일본인 다케히코였다.

오전 8시 선선한 날씨 속에 호기롭게 모래위를 뛰던 것도 10km를 뛰니 끝이었다.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하자 처음으로 접하는 섭씨 50도의 열기에 십분을 채 걷지 못하고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그늘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곳에서 주저앉아 햇빛을 그냥 맞으면 위험하다는 그의 말에 겨우 한걸음을 뗐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사막을 달리는 혹은 걷거나 하는 레이스 첫날이 시작됐다.

지난해 10월 말에 이집트 사하라사막에서 열린 ‘사하라레이스 2009’에 참가했다. 배번호 2번이었던 나는 69시간6분37초의 기록으로 꿈에도 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완주’에 성공했다.

총 250km니 시간당 겨우 3.5km를 간 셈이다. 일반 도보 속도(시속 5∼6km)보다 한참 뒤떨어졌는데도 전체 130여명의 참가자 중 87위, 여자 16위를 했다는 것을 보면 결코 만만치 않은 길임을 알 수 있다.

레이스의 규칙은 단순하다. 물을 공급받고 잠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체크포인트는 8∼10km마다 있었으니 3개의 체크포인트를 지나 정해진 시간내에 체크포인트4(캠프)에 도착하면 된다.

첫날 선두그룹권에 끼어 체크포인트1에 들어온 것으로 ‘멋있는’ 레이스는 끝이 났다. 13kg의 배낭으로 어깨는 부어올랐고, 강렬한 햇빛과 뜨거운 지열 사이에 샌드위치가 되어 기어가기 시작했다.

오후 4시면 캠프에서 쉬고 있을 것이란 내 계획과 달리 그제서야 체크포인트4로 향하는 길에 들어섰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숨막히게 아름다운 사하라 사막의 화이트데저트가 마음을 한없이 설레게 했지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한시간째 사람을 못 봤다. 사막 한 가운데 홀로 남은 상황에서 한걸음 디디니 여긴 왜 왔나 싶고, 또 한걸음에서는 오늘 비교적 짧은 코스가 이럴진데 앞으로 5일을 어떻게 가나 한숨이 나왔다.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천막에서 여자는 나 혼자였다. 그렇다고 도움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발냄새를 풍기며 곤하게 자고있는 참가자 틈에서 조용히 랜턴을 키고 일어났다. 배낭 속에 있는 것들을 전부 쏟아냈다. 아낌없이 버렸다. 작은 용기에 덜어온 화장품은 하나도 안남기고 쓰레기통으로 던지고, 여분의 옷도, 식량도 버렸다. 완주를 못한다면 가지고 있어도 소용없는 물건이었다.

고단했는지 다음날 일어나보니 얼굴도 몸도 퉁퉁 부어 있었다. 몸은 무거워져도 가벼워진 배낭으로 전의를 새롭게 다진 내 눈앞에 복병이 나타났다. 시작부터 바로 모래언덕인 듄이 펼쳐진 것. 발은 푹푹 빠지고 스틱을 짚어도 자꾸 미끄러져 제자리 걸음이니 평생 할 욕을 다 쏟아내고 말았다.
▲ 안상미기자

■ 사하라레이스는… 하루 40~100km씩 6일 동안 걷고 달려 …오지극기 마라톤 '죽음의 레이스'

사하라레이스는 ‘레이싱더플래닛’에서 주최하는 4개 오지레이스 대회 중 하나다.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 집결한 후 사하라사막으로 이동해 하루에 40∼100㎞씩 6일 동안 총 250㎞를 달리는(혹은 걷거나) 극기 마라톤 대회다. 보통 생각하는 마라톤과 달리 참가자들이 자신이 먹을 음식과 침낭, 구급약품 등 20여종 필수휴대품이 들어간 약 10∼15㎏의 배낭을 메고 가야하는데다 더운 날씨 때문에 일명 ‘죽음의 레이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난해 전세계 25개국에서 130여명이 참가했으며, 한국 참가자는 본지 기자를 포함해서 10명(여성 1명)이었다. 참가비만 3200달러에 달하고, 항공료 등은 추가로 들기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 아시아의 일본이나 한국 등 ‘살만한 나라’ 출신이 대부분이다.

오지레이서로 유명한 유지성씨가 레이싱더플래닛의 한국에이전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인들의 참가신청을 대행한다.
주최측으로부터는 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공급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침, 저녁으로는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뜨거운 물을 제공하며, 코스 중에는 체크포인트마다 1.5리터의 물을 받을 수 있다.
레이스 중 숙박은 주최측이 마련해준 천막에 각자 침낭을 펴고 자게 된다. 천막은 국가별로 남녀간 잘 섞이도록 배정된다.
지난해는 10월 말에서 11월초에 걸쳐 열렸으나 올해는 10월 초로 예정돼있어 참가자들이 더위에 대한 준비를 좀 더 해야할 예정이다.
/hug@fnnews.com 안상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