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 욕망과 성공의 문화 아이콘

2015-12-13     전시현
프라다는 이탈리아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패션기업이다. 주요 제품으로 안경·의류·신발·가방·지갑·화장품 등이 있다. 본사는 밀라노에 있고 전 세계 25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매출 35억9000만 유로, 순익 6억2780만 유로를 달성했다.(2013년 기준) 프라다의 역사는 19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자인 마리오 프라다는 당시 밀라노의 중심가에 왕족과 귀족들을 위한 최고급 여행용 가방을 만드는 작은 가게를 운영했다.

그는 최고 품질의 가죽 제품 가방과 여행용 액세서리를 만들어 판매하며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라다의 가게는 1958년 마리오의 사망과 함께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고 가업엔 전혀 관심이 없던 마리오의 아들에 의해 결국 파산의 위기에까지 봉착했다.

1978년 마리오의 손녀인 미우치아 프라다는 부모님에 의해 운영되던 파산 직전의 프라다를 어쩔 수 없이 이어받게 됐다. 가업을 이어받은 그녀는 가방의 소재로 오랫동안 사용되던 가죽을 대신할 독특한 소재를 찾기 위해 고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군용 물품 공장에서 낙하산이나 텐트용으로 쓰인 방수천의 일종인 '포코노나일론(pocono nylon)'을 생산하게 됐고 즉각 이 소재를 이용한 프라다 백을 새롭게 선보이게 됐다.

그녀의 아이디어로 탄생된 프라다의 나일론 백은 출시되자마자 커다란 돌풍을 일으키며 크게 히트를 하게 됐다. 방수용의 평범한 나일론 소재가 프라다와 만나 신선한 패션 아이템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상품에 금속 삼각형 모양의 모노그램을 새롭게 새겨 넣었다. 파산 직전의 위기에서 가업을 구해낸 그녀는 프라다 나일론 백의 성공 이후 1989년에는 첫 여성복 컬렉션을 개최했으며 이어 1993년에는 남성복 브랜드인 '미우미우', 1997년에는 프라다 스포츠에 이어 스킨케어 라인까지도 출시됐다. 평범한 소재와 디자인의 프라다 나일론 백이 파산 직전의 프라다 브랜드를 하나의 거대한 패션 제국으로 변모시켜 놓을 정도의 성공을 가져오게 될지 감히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미우치아 프라다는 정치학을 전공한 정치학도였다. 그녀가 패션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상식을 넘어선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시도들이 성공을 불러올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녀는 "단지 보기에 아름다운 옷보다는 입어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옷, 자신이 가장 입고 싶은 옷을 만들고자 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프라다가 추구하는 패션은 실용주의에 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지적인 스타일로 프라다만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프라다 패션의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프라다는 욕망과 성공의 문화 아이콘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1920년대 미국 상류층의 물질주의와 함께 무너져가는 아메리칸 드림을 묘사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상류층의 화려한 생활을 그리기 위해 미우치아 프라다가 직접 영화 제작에 참여해 2000여 벌 의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처럼 프라다는 오늘날 단순히 명품을 넘어 개척의 문화, 욕망과 성공의 문화를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인식되고 있다.

프라다는 적극적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왔는데 각 분야에서 체계적인 생산 시스템을 갖춘 업체와 협업을 맺어 발전해 왔다.

2000년 프라다 그룹은 룩소티카 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프라다와 미우미우의 선글라스 및 안경을 개발했다. 현재는 프라다가 프라다와 미우미우의 선글라스, 안경 디자인과 스타일링, 컬렉션과 관계된 커뮤니케이션을 맡아 진행하고 있으며 룩소티카가 제품 생산과 배포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고 있다.

jun7564@fneyefocus.com 전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