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경원에서 판매하는 것을 '안경'이 아닌 다른 단어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뭐라고 답하겠습니까." 얼마 전 직원들과 함께 한 강의에서 연사에게 받은 질문이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물리적인 이름이 아닌 다른 것으로 표현할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안경의 경우 시력이 나쁜 아이에게는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밝은 시야, 학생에게는 어떤 직업도 꿈 꿀 수 있는 희망, 노안의 장인에게는 예술혼을 더할 수 있는 시간, 패셔니스타에게는 개성과 자신감처럼 말이다.
이처럼 안경을 비롯해 모든 유무형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은 단순히 상품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소비자가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전하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나 또한 고객에게 물건이 아닌 특별한 가치를 주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항상 고민해 왔다. 10년 전 사업을 시작 할 때부터 그랬다. 내 자신이 내 제품을 쓰는 주부와 같은 삶을 살고 있었기에 진심으로 삶을 조금 더 편하고 가치 있게 만들어줄 제품을 열망했다.
2001년 한경희생활과학의 첫 스팀청소기였던 '스티미'를 시장에 선보였을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오랫동안 준비한 선물을 전하는 마음으로 주부들에게 '고된 가사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선물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선물을 준비한 내 마음이 전해질 때까지 포장을 새로 하고, 내용물도 바꾸며 끊임없이 노력했다.
어느 날 회사로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하얀색 규격 봉투에 고운 글씨로 '스티미 사장님'이라고 적혀 있었다. "스팀이 나오는 청소기가 신기했던지 남편이 청소를 해보겠다며 집안일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주말이면 같이 청소를 하고, 청소 후에 차 한잔도 함께 하는 시간이 생기며 서로에 대한 서운함도 사랑하는 마음도 나눌 기회가 많아졌어요. 고맙습니다." 또한 관절염 때문에 청소를 할 때마다 무릎이 아파 고통스러웠는데 스팀청소기를 쓰고 청소하는 시간이 힘들지 않다거나, 어머니께서 알뜰하셔서 선물해드리고 좋은 말씀을 듣기 어려운데 좋은 선물을 해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생전 처음 들었다는 등 사연이 줄을 이었다.
빛의 스펙트럼을 처음 봤을 때의 감동이 떠올랐다. 한 줄기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며 다채로운 컬러를 뿜어내듯, 소비자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소중한 자신만의 가치를 삶에서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치를 선사한 한경희생활과학에 큰 지지와 사랑을 보내주었다.
몇 년 전에 읽은 '러브마크(lovemarks)'라는 책에서 세계적인 광고 회사의 최고경영자(ceo)인 저자는 소비자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브랜드를 '러브마크'라고 칭하고 러브마크가 되기 위해서는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마음을 사라고 조언했다. 이성이 아니라 감성으로 구매하는 소비자의 마음을 사랑으로 감동시켜야 한다고.
수십통의 전화와 편지 속에 담긴 내용은 다양한 색채를 갖고 있었지만 '소중한 가치'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그것으로 나는 소비자를 감동시켜 그 마음 속에 아주 작은 러브마크를 그릴 수 있었다.
올해로 탄생 10주년을 맞이한 스팀청소기는 주부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 지금까지 국내에 700만대가 보급됐다. 혁신적인 아이디어 상품으로 소비자들에게 크게 어필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큰 성공 요인은 고객들의 꿈과 욕망을 이해하고 그것을 실현해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고객들은 스팀청소기를 구매함으로써 단순히 청소하는 기계 하나를 소유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편리함과 자신의 행복을 위해 투자할 시간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내가 몽블랑 만년필을 쓰는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펜 뚜껑을 돌려서 여는 동안 그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것이 정말 최선인지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시간을 주거든요." 중견회사의 대표인 한 지인이 몽블랑을 쓰는 이유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에게 펜 뚜껑을 돌려서 여는 다른 만년필을 선물해도 그는 그의 펜을 바꾸지 않을 것이란 걸. 스위스의 몽블랑 꼭대기에 쌓인 만년설은 그에게 특별한 감동을 주는 러브마크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고객들에게 진정한 러브마크가 될 날을 꿈꾸며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실행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사랑에는 오랜 노력이 필요하니까.
이지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