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안경의 오늘을 얘기한다
세계 3대 안경 생산지 후쿠이현의 동향과 일본 생활
‘일본 속의 후쿠이현’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후쿠이현의 안경 만들기는 80년대 최고의 호황을 끝으로 조금씩 추락하며 90년대 후반부터 가속화된 중국의 급속한 안경산업 성장과 리먼쇼크 등으로 2011년 현재 최악의 불황에 빠져있다. 인구 80만명의 후쿠이현은 일본에서 조차 인지도나 지명도가 아주 낮은 시골에 속한다. 이런 시골마을이 세계 3대 안경 생산지로 회자되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인 것 같다. 필자가 안경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되면서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던 후쿠이현에 대한 동경은 안경을 천직으로 생각하는 직업적인 의식에서의 발로도 있지만 전형적인 시골 풍경의 모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도시 기능을 겸비한 후쿠이현의 독특한 분위기도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여름에는 덥지만 습하지 않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지만 춥지 않은 독특한 기후 역시 마음에 드는 부분 중에 하나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것은 비가 많이 온다는 것이다. 후쿠이현 속담에 '도시락을 잊어먹더라고 우산은 잊어먹지 말아라'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후쿠이현은 비가 많이 온다. 비를 좋아하는 필자에게는 더 없이 좋은 환경 인 것이다. 처음에 raincoat 라는 회사명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지만 이유를 듣고 나면 그럴듯하다는 반응을 보여주곤 한다.
필자의 회사가 위치한 곳은 후쿠이현의 사바에시 라는 곳으로 안경 도시라고 할만큼 안경관련 공장,회사들이 밀집해있다.
일본인들은 사회적 규범-약속에 철저히 순응
한국서 말하는 '정' 과 연민은 냉정해 씁쓸
‘일본에서 회사를 한다는 것’
원칙적으로 이민을 받지 않는 일본이기 때문에 일본에 살기 위해서는 먼저 비자가 필요하다.
관광목적의 3개월 미만의 단기체류자는 비자가 없어도 되지만 3개월 이상의 체류를 위해서는 학생비자,취업비자,결혼비자,경영비자 등 체류 목적에 비자를 취득해야 하고 체류 기간에 따라 갱신을 해야 한다. 취업비자를 포함 경제활동 가능한 비자 자격으로 10년 정도 일본에 거주하면 영주권 신청이 가능하게 된다. 필자처럼 외국인이 일본에서 회사를 설립한다는 것은 두 가지의 목적을 의미한다. 첫번째는 말 그대로 회사를 설립,경영하기 위해서이고 두번째는 일본에 거주하기 위한 비자 취득을 위해서 라고 하겠다. 기본적으로 외국인은 자본금 500만엔(현재 환율로 대략 7천만원)이상의 법인을 설립 해야만 한다. 경우에 따라 설립 초기 회사규모나 매출, 경영을 생각하면 초기 자본금이 부담 스러울수도 있겠지만 외국인은 이유 불문하고 법인을 설립해야 한다. 아니 그래야만 경영비자 받기가 쉽다. 회사를 설립했는데도 정작 비자가 안 나온다면 일본에 거주할수 있는 자격이 없기 때문에 회사를 경영 할수 없게 되는 것이라 회사설립 자체가 무의미하게 될 수 있다.
예전에는 일본인을 포함 직원 2명 이상 을 고용해야 한다는 조건도 있었지만 지금은 경기악화로 강제적 적용에서 조금은 유연하게 바뀌었다. 한국에서도 법인을 경영해본 경험이 없던 필자는 일본에서 법인경영과 외국인의 법인경영이라는 이중적인 부담을 안고 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의 바이어들에게 오더를 수주하고 생산관리 하여 납기에 맞춰 선적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항상 시간에 쫓기는데 각종 회계,세무등의 일들로 처음 얼마간은 혼란 속에서 전혀 정리가 안되었다.

‘일본에 산다는 것’
필자가 일본에 완전 이주해서 새로운 생활을 한지 벌써 4년째가 되간다. 지금도 안경업을 천직이라 생각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고 작은 회사를 운영하면서 안경일을 계속하고 있지만 일상생활도 그렇고 회사운영도 그렇고 아직까지 일본에 완전한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과 일본은 많은 부분에서 비슷하고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2000년 초반부터 출장으로 매년 5∼6회 를 넘게 방문하던 일본이라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나름대로 알고 이해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정작 이주 정착 후에 많은 것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고, 느끼고, 놀라게 되는 것 같다. 사회적 규범과 약속에 철저히 순응하고 타인에 대해 폐를 끼치면 안된 다는 일본 사회의 오래된 관습은 일본사회를 합리적이고 질서있게 유지하는 강력한 파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 소위 한국에서 말하는 '정' 과 연민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냉정한 것 같다. 조금이라도 애매하거나 무리한 부탁은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피해야 하는 것이며 상대방의 곤란에 대해서 도와주려는 마음도 없고 설사 마음이 있다 하더라고 그 과정에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곤란하게 작용할 요소가 있다면 그러한 마음조차도 깨끗하게 비워버리는 것 같다. 약육강식의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익이나 계산 없이 인간적으로 친분관계를 맺고 서로의 곤란에 대해서 상부상조 한다는 것이 한국이던 일본이던 애초에 어려운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필자는 일본생활에서 왠지 공허하고 허전한 마음을 느낀다.
‘일본에 살아야 하는 것’
필자가 대단하게 거창한 꿈을 가지고 이곳 일본 후쿠이 까지 온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후쿠이에 정착한 이상 회사운영이던 인생이던 제대로 멋지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일본에는 일본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고 관습이 있기에 이해가 안가고 섭섭하더라고 순응하며 적응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어느순간 몹시 답답하고 쉴틈없이 심각한 고민을 만들게 한다면 필자는 돌연 일본에서의 인생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이목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40대 초입에 들어선 필자는 어느새 인생의 후반부를 달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국에 있을 때 시큰둥하게 감동없이 듣던 그 흔한 트로트 노래 소리가 어쩌다 일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나도 모르게 한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뜨거워지는걸 느낀다. 아직까지 완전한 정착이 아닌 어정쩡한 이방인으로 일본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안경에 대한 꿈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 필자는 일본에 살고 있는 의미를 찾고 있는것이다.
강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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