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민생규제 혁신 ‘원데이 C/L 온라인 판매’ 관련 논란 지속

의료기기 2등급 임에도 ‘안전성 낮은’ 등 제품이해 부족도 문제

제조·유통·전문 프랜차이즈 “손놓고 기다리는 상황, 막막하다

콘택트렌즈 온라인 판매가 다시 한번 가시화되면서 업계 전반적으로 어수선 한 분위기다.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콘택트렌즈 업계에서도 정부의 구체적인 지침이 내려오지 않았으니 우리가 대처할 사항이 없다. 그냥 지금은 손 놓고 시간만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사건의 발단은 최근 정부가 발표한 민생규제 혁신방안에 따라 콘택트렌즈 온라인판매 실증특례를 허용한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정부는 해당 사안을 제일 처음으로 내세우면서 대표적인 안건으로 취급하고 있는 만큼 소비자들 역시 주목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시행 일자도 명시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 시행을 목표로 적어도 오는 1월에는 그 실체를 갖추겠다는 것이 정부 의지다. 대상은 원데이 콘택트렌즈로, 기존에는 안경원에서만 구매가 가능했지만 실증특례가 시행되면 콘택트렌즈 제조사와 소비자를 잇는 중간 판매 플랫폼을 통해서 온라인으로 구매가 가능해진다. 판매가 가능한 플랫폼 신청을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물류창고 보유 유무, 업계에 어느정도 이해도가 있는 관계자 등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그 조건이 까다롭지 않으며 단기간에 충분히 충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부 기업이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해당 사안은 졸속으로 결정된 것이 분명해 보이는 몇 가지 문제점들이 보인다. 첫 번째로 원데이렌즈를 안전성이 제일 낮다고 표현한 데 있다. 원데이렌즈는 의료기기 등급 중 2등급으로 생명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수술용 기기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등급이다. 직접 각막에 닿기 때문에 착용하는데 있어 주의해야 함에도 안전성이 낮다고 표현한 것이다.

두 번째로는 원데이렌즈 종류에 제한을 두지 않은 것이다. 국내 원데이렌즈 시장은 단시간에 빠른 성장을 거뒀을 정도로 꽤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제품군이다. 그만큼 다양한 제품군이 출시돼 있다. 기능성렌즈라고 불리는 난시, 멀티포컬 제품도 원데이 버전으로 출시돼 있다. 기능성렌즈는 반드시 전문가와의 상담, 검사를 통해 제품을 구매해야 하지만 인터넷 판매가 풀린다면 기능성렌즈도 무도수 컬러렌즈와 동일한 상품으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다. 수년간 기능성렌즈 성장을 주도해온 콘택트렌즈 기업들 입장에서는 기운 빠지는 얘기다.

이런 정부 발표에 안경사들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콘택트렌즈 제조사 역시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민생규제 혁신방안을 발표하기 전 그 어떤 정부기관과도 접촉 한 번 없이 막무가내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콘택트렌즈 제조사 A업체 교육팀 관계자는 콘택트렌즈가 온라인 판매가 된다고 해서 기업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구매가 수월해지기 때문에 매출이 지금보다 훨씬 늘어날 수는 있겠지만 그 외에 불편한 점을 우리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안경사가 중간에서 제품 설명, 상담, 컴플레인 대처, 반품 등의 과정을 맡아줬는데 중간 플랫폼에서 구매가 활성화되면 그 모든 과정들은 우리의 몫이 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B업체 마케팅팀 담당자는 안경사 분들이 생각하시기에 우리가 직접적으로 온라인에서 판매하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안경사를 통해 판매하는 것을 원한다우리 직원들이 해야할 일들을 안경사 분들이 나눠서 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C업체 영업팀 관계자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는 현재는 우리와 거래하고 있는 모든 안경원이 전국 곳곳의 물류창고 역할도 하고 있다. 온라인판매가 활성화되고 안경원에서 콘택트렌즈 판매를 포기하면 당장 그 어마어마한 재고를 우리가 어떻게 감당하겠냐고 토로했다.

콘택트렌즈 전문 프랜차이즈 본사 역시 난감하다. 뷰티렌즈 특성상 원데이렌즈가 적지 않은 만큼 곧바로 표적이 된 셈이다. 수십곳부터 수백곳까지 가맹점을 보유하고 있는데 온라인 판매가 이뤄지면 그 가맹점들이 줄도산할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물론 콘택트렌즈 온라인 판매가 언제든 시행될 것이라는 의견에는 업계 내에서도 어느정도 동조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처럼 업계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이 졸속으로 빠르게 처리하려는 분위기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콘택트렌즈 도매사들도 입장은 비슷하다. 도매사 D업체 관계자는 “1월에 시범적으로 온라인 판매를 허용하겠다는 건 물리적으로 쉽지 않을 것 같다. 만약 실행된다면 렌즈 도매사의 경우 답은 없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온라인 판매를 한다고 해서 글로벌 업체들이 도매사들에게 정상적으로 제품을 줄 일도 없을 것이고, 또 판매한다고 해도 같은 제품의 경우에도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어떻게 판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만약 판매가 허용된다면 도매사들도 상황에 맞춰 대비를 해야하지 않겠나. 앞으로 추이를 유심히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민생규제 혁신을 이끌고 있는 정부부처 관계자들 역시 업계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보인다. 중소벤처기업부 책임자와 미팅을 진행한 바 있는 한 업체 관계자는 미국의 검안 시스템이나 안경 판매 구조에 대해 단편적으로만 알고 이를 국내에 도입하려는 목표인 것 같은데 출발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검안사라는 직업이 따로 있고 검안부터 피팅, AS비용까지 모두 청구해서 받기 때문에 온라인 판매도 가능하지만 국내는 검안비 청구도 정착이 되지 않은 상황인데 무조건 온라인 판매를 허용하면 안경사들만 모두 죽으란 소리 아니냐. 온라인 판매가 되기 전에 이런 부분이 선행돼야 하는데 순서가 한참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콘택트렌즈 온라인 판매와 관련된 법안이 한 두 번 나온 얘기는 아니지만 이렇게 지속적으로 건드리는 것에는 내부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전문성을 토대로 콘택트렌즈를 판매하기보다 지속적인 할인으로 판매한 일부 안경원들의 문제도 있다는 점이다. 원하는 제품이나 도수만 물어보고 판매하는 게 편의점과 별다를 게 없으니 온라인 판매도 가능하다는 인식을 세운 것 아니냐는 것.

지금은 원데이렌즈에 한해서지만 곧 한 달 착용 제품도 풀리게 될 것이고 콘택트렌즈보다 상대적으로 위험등급이 낮은 안경렌즈 역시 온라인 판매가 가능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도수가 있는 근용안경도 뺏기게 된다. 안경, 선글라스는 업계로 되찾아 올 수 있는 기회마저 없어진다.

서울에서 안경원을 운영하는 E 원장은 더이상 정부에게 국민 눈건강 보호라는 단순한 이유로만 반대하는 것은 먹히지 않을 것 같다. 정부가 미국의 검안 시스템을 벤치마킹 했다면 그 시스템은 국내 실정과 어떻게 다른지, 그렇게 되면 안경사들은 물론 국민들이 어떤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되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문제점을 제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예를 들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안경을 맞추는데 최소 50만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하고 대기시간만 2주 이상이 걸린다. 그에 비해 더 저렴한 가격과 빠른 시간 내에 안경을 맞출 수 있는 한국 시스템을 경험해 온 소비자들은 그 피해를 입을 수 있게 되는 점들을 정확하게 짚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무리 두꺼운 벽이라고 해도 한 번 균열이 생기면 금방 허물어진다. 원데이렌즈를 내주게 되면 사실상 안경원에서 취급하는 모든 품목에 대한 빗장이 풀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더군다나 지금 중간 판매 플랫폼으로 거론되는 유력 업체는 안경업계에 공헌이 있었거나 경험 많은 업체는 아니다. 안경업계도 대기업에 먹힐 수 있다는 우려가 가장 크다. 이미 허용이 된다면 부작용 사례들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다시 되돌리기에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지금 당장 온라인 판매가 허용되는 것 자체를 막아내야 한다. 5만 안경사 모두의 관심과 힘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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